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스타브 2세 아돌프 (문단 편집) === 군사 === [[30년 전쟁]]에서 여러 혁신적인 전술을 내놓아 활약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일명 '''근대전의 아버지''' 라는 별명이 잘 알려져 있다. [[클라우제비츠]]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명으로 여겼고, [[조지 S. 패튼]] 등도 그러한 평가를 내렸다. 군사행정에 있어서는 초기형의 [[국민개병제]] 하의 상비군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훈련된 대규모 징집병을 동원할 수 있었고, 보병전에 있어서는 [[테르시오]]로 대표되는 두꺼운 사각방진 대신 얇은 선형진을 도입해 높은 화력과 포병에 대한 회피능력을 만들었으며, 기병전에 있어서는 종래의 [[카라콜]] 전술을 버리고 다시 돌격을 중심으로 한 교리를 만들어 기병을 다시 부각시켰으며, 포병전에 있어서는 경량화 된 야전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기동성을 높히고 테르시오 같은 두꺼운 방진을 격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해군 역시 현대 스웨덴군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정비하였다. 특히 인구나 자원 같은 물적 악조건을 내부적 시스템 개선을 통해 만회하는 정도를 넘어 패권을 행사할 만큼 끌어 올리는 강소국의 탄생이란 면에서 구스타브 아돌프 치하의 스웨덴은 먼 훗날 [[독일 제국]]을 만든 [[프로이센 왕국]]의 모델이 될만큼 중요했다. 당장 구스타브 아돌프가 죽은 후 70여 년 뒤 [[스웨덴 제국]]의 패권을 [[대북방전쟁]]을 통해 결정적으로 꺾어놓은 [[러시아 제국]] [[표트르 대제]]의 모델도 역설적이지만 이 시기 스웨덴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